촉산검협전 · 제8회

숲속에서 검을 겨루다 운중학이 막다른 곳에서 살아나고 절 안에서 속을 터놓다 소화신이 서쪽으로 구원을 청하러 가다

林中比剑 云中鹤绝处逢生 寺内谈心 小火神西行求救

한편 주순(周淳)은 그 집 뜰 안에서 울며 살려 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얼른 몸을 날려 지붕에 올라 뜰 안을 내려다보았다. 뜰 한가운데서 중 하나가 손에 계도(戒刀) 한 자루를 들고 한 부인을 을러대는 참이었다.

"내가 오늘 너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네게 하늘만 한 복이렷다. 어서 나를 따라 자운사(慈雲寺)로 가기만 하면 끝없는 부귀를 다 누리지 못할 만큼 누릴 것이다. 그래도 따르지 않는다면 독수를 쓸 테다."

부인이 맞받았다.

"어서 나가면 그만이지만, 내 남편 위청(魏靑)은 만만히 건드릴 사람이 아니오."

말을 마치고 또 두어 번 살려 달라고 외쳤다. 중이 막 손을 쓰려는데, 주순은 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흉악한 중놈아, 무례하게 굴지 마라. 내가 간다!"

말이 닿자 사람도 닿고 검도 닿았다. 한 줄기 찬 빛이 곧장 중의 가슴 한복판을 찔러 갔다. 중은 그 기세가 몹시 급한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한 걸음에 훌쩍 뛰어 물러나더니 손의 계도를 내던지고 곁에 있던 선장(禪杖)을 집어 들어 급히 받아 맞섰다. 몇 합을 싸우다가 중이 문득 괴상하게 웃었다.

"누군가 했더니 바로 네놈이었구나! 내가 너를 몇 달이나 찾았는데 뜻밖에 여기서 만나다니, 이것도 내 복이다."

말을 마치자 선장 한 자루가 번개가 날듯이 굴러 들어왔다. 주순이 그 말이 수상쩍어 자세히 보니, 바로 반년 동안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경계해 온 다비웅(多臂熊) 모태(毛太)가 아닌가. 오늘 뜻하지 않게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그의 재주가 크게 나아갔으니 저는 틀림없이 맞수가 못 됨을 이미 아는 터였다. 주순은 손의 검을 한번 다잡아 쥐고 장사출동(長蛇出洞)의 세로 모태의 목을 겨누어 찔렀다. 중은 그 기세가 너무 사나운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몸을 한번 피하였다. 주순은 이 틈을 타 싸움판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깐, 잠깐. 할 말을 다 하고 나서 싸우자."

"원수끼리 얼굴을 맞댄 터에, 네게 무슨 할 말이 더 있느냐?"

모태가 이렇게 받자 주순이 말했다.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아라. 그때 네가 내 손에 졌을 때 내가 네 목숨을 거두기는 손바닥 뒤집기와 같았다. 다만 네 한 몸의 무예가 아까워 달아나게 놓아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네가 은혜를 원수로 갚아 또 원수를 갚겠다고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 사람 밖에 사람이 있고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너는 십 년 동안 검법(劍法)을 배워 이루었으니 힘자랑을 해도 되리라고만 여기겠지. 허나 나도 황산(黃山)의 찬하대사(餐霞大師)와 취도인(醉道人)을 스승으로 모셨음을 알아야 한다. 네가 헛되이 마음과 힘을 써 보았자 내 맞수는 못 된다. 일찌감치 이 여자를 놓아주면 나도 너를 놓아 보내마. 그러지 않으면 오늘 너는 벌을 면하기 어려우리라."

주순의 이 말은 본디 없는 일을 지어낸 급한 꾀였건만, 모태는 듣고서 참말로 믿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렸다.

모태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주순이 찬하대사를 스승으로 모셨다면 내 검술(劍術)은 틀림없이 그의 맞수가 못 된다. 그러나 내가 가까스로 십 년의 심혈을 들였는데, 오늘 이 원수를 갚지 못하면 그것도 크게 분하다.'

그러고는 주순에게 말했다.

"그때 내가 네 손에 졌을 때 쓰던 병기는 칼 한 자루였다. 지금 이 선장은 내가 십 년을 익힌 것이다. 너와 나는 오늘 둘 다 검법으로 이기려 할 것 없이, 저마다 손에 든 병기에 맡기자. 내가 또 진다면 이제부터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 네 뜻은 어떠냐?"

주순은 듣고 보니 바로 제 마음에 맞는지라 담이 얼마쯤 커져서 대답했다.

"어느 것으로 겨루든 내가 다 상대해 주마."

말을 마치자 두 사람은 또 한데 어울려 싸웠다. 찬 빛은 늠름하고 찬 기운은 삼엄한데, 두 사람은 그야말로 위아래를 가릴 수 없었다. 주순은 싸우다가 흥이 올라 말했다.

"여기는 너무 좁아 무예를 쓰기에 마땅치 않다.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 싸울 배짱이 있느냐?"

"나도 마침 밖에서 네 개 같은 목숨을 거두려던 참이다."

이때 그 부인은 벌써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달아나고 없었다. 두 사람은 하나는 앞서고 하나는 뒤따라 뜰 안에서 담 밖의 빈터로 뛰어나가 새로 또 손을 쓰기 시작하였다. 원수가 얼굴을 맞대면 유난히 눈에 핏발이 서는 법이라, 평생의 무예를 다 펼쳐 풀기도 가르기도 어렵게 싸웠다.

주순은 모태가 싸울수록 용맹해지는 것을 보고, 과연 지난날의 아몽(阿蒙)이 아님을 알았다. 또 그가 비검(飛劍)을 놓으면 맞수가 못 될 것이 두려워,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손의 보검을 한번 다잡아 쥐었다. 마침 모태가 태산압정(泰山壓頂)의 자세로 선장을 정수리로 내리쳐 왔다. 주순은 몸을 한번 피했다. 모태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급히 선장의 다른 쪽 끝을 돌려 주순의 허리를 가로로 쓸어 왔다. 그 기세가 몹시 사나운지라 주순은 감히 검으로 막지 못하고, 발을 한번 디뎌 몸을 일고여덟 자 넘게 솟구쳤다.

모태는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주순의 몸이 공중에 떠서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은 틈에 선장을 휘둘러 발을 쓸어 갔다. 주순은 그가 반드시 이렇게 나오리라고 일찌감치 헤아리고 있던 터라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선장이 닿기 전에 오른발을 왼발 등에 올려 딛고 그 힘을 빌려 한번 힘을 쓰니, 아래로 떨어지기는커녕 도리어 위로 몇 자를 더 솟구쳤다. 이것이 몸을 가볍게 하는 법 가운데 청정점수(蜻蜓點水) · 연자비운종(燕子飛雲蹤)의 공부로, 주순이 평생 닦은 절기였다.

모태는 선장이 허공을 치자 힘을 너무 사납게 쓴 탓에 몸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한번 휘청하였다. 주순은 홀연 선학반운(仙鶴盤雲)의 세로, 검과 사람이 함께 곧장 모태의 정수리 위로 덮쳐 내렸다. 모태는 "아뿔싸!" 하고 외치며 급히 발아래에 힘을 주어 몸을 비스듬히 눕혀 앞으로 뛰어나갔다. 재빨리 달아나기는 하였으나, 이미 주순의 검 끝에 왼팔이 너덧 치 길이로 그어져 피 고랑이 났다. 모태는 더욱 성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주순은 모태가 바로 설 틈도 주지 않고 또 몸을 날려 한 검을 찔러 들어갔다. 모태는 미친 들짐승처럼 급히 몸을 돌려 주순과 목숨을 걸고 맞붙었다.

이때는 벌써 해 질 녘이 가까웠다. 주순은 한나절을 싸우고서 쉽게는 이길 수 없음을 알고, 홀연 몸을 솟구치며 검을 한번 춤추어 한 장 남짓한 검꽃 한 줄기를 이루었다. 모태는 또 무슨 절기를 쓰는가 의심하여 잠깐 정신을 모았다. 주순은 그 틈을 타 발을 빼어 달아났다. 원수가 달아나는 것을 본 모태가 어찌 순순히 그만두려 하겠는가. 급히 뒤에서 바싹 쫓았다.

주순은 달리면서 가만히 연주노(連珠弩)를 꺼내 손에 쥐었다. 모태는 주순의 걸음이 차츰 느려지는 것을 보고 막 몸을 날려 앞으로 덮치려 하였다. 주순이 홀연 고개를 돌리며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맞아라!"

한 가닥 찬 빛이 곧장 모태의 얼굴을 향해 갔다. 모태는 암기인 줄 알고 급히 고개를 숙여 피해 넘겼다. 그런데 주순의 연주 강노는 한번 쏘면 열두 대였으니, 위태로운 때가 아니면 쉽사리 꺼내 쓰지 않되 쓰기만 하면 아무리 큰 무예를 지닌 자라도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모태가 그 매서움을 어찌 알았으랴. 첫 대를 막 피하자 잇달아 날아드는 노 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쏟아졌다. 과연 모태라, 뛰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막아 냈다.

일곱째 대에 이르렀을 때였다. 주순이 홀연 노 화살 다섯 대를 한꺼번에 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한 대는 목을, 두 대는 배를, 두 대는 좌우 팔을 노렸으니, 이것의 이름이 오타매화천운노(五朵梅花穿雲弩)였다. 모태가 아무리 피하기를 잘한들 두 대를 맞고 말았다. 한 대는 왼팔에 맞아 그리 큰일이 아니었으나, 한 대는 공교롭게도 얼굴로 날아들었다. 본디 모태는 그 기세가 몹시 급해 피할 길이 없으므로 입으로 받으려 한 것인데, 왼팔에 화살을 먼저 맞은 데다 또 그 한 대를 피해야 하니, 한때 마음이 바쁘고 뜻이 어지러워 이쪽을 돌보다 저쪽을 돌보지 못하고, 한번 방심한 사이에 앞니 둘이 부러졌다. 곧바로 피가 쏟아지듯 흐르고 아픔을 견딜 수 없는지라, 하릴없이 아픔을 참고 몸을 돌려 달아났다.

주순은 마땅히 뜻을 얻었으니 더 쫓지 말았어야 옳았다. 그러나 모태가 다친 것을 보고 마음이 한번 들뜨자 몸을 돌려 쫓아갔다.

모태는 주순의 말을 듣고 그가 이미 찬하대사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여겼기에 감히 비검으로 맞서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뒤 두 사람이 한나절을 싸워도 이기고 짐이 나지 않자, 조급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검 쓰는 일을 잊고 말았다. 그러다 저는 다치고 주순이 몸을 돌려 쫓아오자, 저도 모르게 퍼뜩 깨달았다.

'주순이 찬하대사를 스승으로 모셨다면 그의 검술은 마땅히 나보다 매서울 것이고, 나는 그가 두려워 감히 검을 놓지 못했다. 그런데 검술이 나보다 센 그가 어찌하여 저도 감히 쓰지 못하는가? 혹시 그 속에 속임수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의 간사한 꾀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한번 시험해 보는 것이 낫겠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돌려 보니, 쫓아오는 주순이 이미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모태는 몸을 돌려 금신나한(金身羅漢) 법원(法元)이 내려 준 적음검(赤陰劍)을 꺼냈다. 손을 드는 곳에 한 줄기 누런 빛이 주순을 향해 날아왔다.

주순은 한창 쫓던 참에 문득 모태가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 검을 놓으려는가 두려웠다. 궁한 도적은 쫓지 말라 했거늘 제가 너무 방심하였다고 막 뉘우치는데, 모태는 벌써 검광(劍光)을 놓았다. 주순은 그 매서움을 아는지라 몸을 돌려 나는 듯이 앞으로 달아났다. 모태는 그것을 보자, 앞서 주순이 찬하를 스승으로 모셨다던 말이 온통 거짓이며 제가 크게 한번 속았음을 알았다. 더욱 성이 나서 검광을 몰아 뒤에서 쫓아왔다. 주순은 이미 어느 숲속으로 달려 들어갔는데, 검광이 지나는 곳마다 나뭇가지가 비 오듯 우수수 떨어졌다.

이때 주순과 검광 사이는 한두 장 남짓에 지나지 않아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목숨을 건지기 어려움을 알고,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모태는 주순이 이미 막다른 곳에 이른 것을 보고 득의양양하여 저도 모르게 껄껄 크게 웃었다. 이때 검광은 이미 주순의 정수리 위, 아래로 한번 떨어지기만 하면 몸과 머리가 따로 놓일 판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틈도 없는 바로 그 순간, 문득 긴 휘파람 소리가 한 번 나더니, 어느 나무 위에서 한 줄기 푸른 빛이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 내려와 누런 빛을 정면으로 꼭 맞받아 막았다. 하늘빛이 어둑어둑한 이때, 푸른 것 하나 누런 것 하나 두 줄기 검광이 신룡이 꿈틀거리듯 하늘에서 날며 춤추니 참으로 볼만하였다.

모태는 주순이 틀림없이 제 검 아래 죽으리라고만 여겼는데, 난데없이 이런 억센 적수가 나타나니 저도 모르게 조급하기도 하고 성이 나기도 하였다. 주순은 막 눈을 감고 죽으려다가 한참이 지나도 아무 기척이 없으므로 고개를 들어 보았다. 누런 빛은 이미 정수리 위를 떠나 공중에서 한 줄기 푸른 빛과 맞버티고 있었다. 고인이 와서 구해 주는 줄 알고 마음과 정신이 그제야 가라앉았다. 다만 어둑한 가운데라, 검을 놓아 저를 구해 준 사람이 어디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주순은 눈이 매우 밝았다. 정신을 모으고 눈을 똑바로 떠 검이 나온 곳을 자세히 찾아보니, 도인 하나가 곁에서 멀지 않은 큰 나무의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가만히 그리로 걸어가, 모태를 죽인 뒤에 절하고 사례할 생각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고는 저도 모르게 크게 기뻐하였다. 그 사람은 등에 붉은 호로 하나를 지고 있었으니, 요 몇 달 동안 꿈에도 넋을 잃고 만나고자 하던 바로 그 취도인임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 막 나아가 말을 건네려는데, 취도인이 문득 그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주순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때 하늘에서는 누런 빛이 눌릴수록 작아지고 푸른 빛은 더욱 기이한 빛깔을 뿜어냈다. 다비웅 모태는 다급하여 귀를 비비고 가슴을 치며 간담이 떨리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한창 어찌할 수 없는 그때, 주순은 모태가 넋을 놓고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 품속의 암기 몰우비황석(沒羽飛蝗石)을 꺼내 모태의 앞가슴을 겨누어 던졌다. 돌은 그대로 맞아 모태를 한 번 나동그라지게 하였다. 정신이 한번 흩어진 사이에 누런 빛은 더욱 낮아지고 작아져, 보기에도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문득 서남쪽 하늘에서 몹시 가느다란 붉은 줄 서너댓 가닥이 날아오고, 멀리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취도인이 홀연 나무에서 뛰어내려 주순에게 가만히 일렀다.

"어서 나를 따라오게!"

주순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한 손을 벌써 주순의 겨드랑이 밑으로 질러 넣더니, 검광을 거두고 주순을 끼고서 몸을 날려 큰길을 따라 성안으로 향하였다.


모태는 다급하여 땀이 줄줄 흐르던 참에 푸른 빛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얼른 제 검을 거두어들였다. 다시 주순을 찾아보니 벌써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끝내 맞은편의 적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답답해하는데, 문득 눈앞에 한 줄기 붉은 빛이 번쩍하더니 앞에 한 사람이 우뚝 섰다. 원수인가 의심하여 막 손을 쓰려는데 그 사람이 불쑥 말했다.

"현제(賢弟), 무례하게 굴지 말게!"

모태가 눈을 똑바로 뜨고 보니 저의 막역한 벗 비천야차(飛天夜叉) 진랑(秦朗)이었다. 저도 모르게 크게 기뻐하며 얼른 나아가 인사를 하였다. 진랑은 모태에게 어찌하여 혼자 여기 있느냐고 물었다. 모태는, 산을 내려와 주순을 찾아 원수를 갚으려고 자운사에 머물고 있다는 것, 오늘 공교롭게 주순을 만나 속아서 화살을 맞았다는 것, 나중에 제가 적음검을 놓고서야 이기게 되었는데 문득 어둠 속에서 누가 선검(仙劍)을 놓아 주순을 구해 갔다는 것, 막 당해 내지 못하던 참에 검을 놓은 사람과 주순이 삽시간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되었다는 것을 한바탕 이야기하였다. 진랑이 말했다.

"내가 오다가 숲속에서 푸르고 누런 두 빛깔의 검광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그 가운데 본문(本門) 사람이 여기서 적수를 만난 줄 알고 급히 내려와 도우려 했네. 한데 벌써 달아나 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아마 그자들이 나인 줄 알아보고 절대로 맞수가 못 됨을 알아서 달아난 게지. 아깝게도 내가 한 걸음 늦어 그자들을 놓쳤네."

진랑은 본디 화산(華山) 열화조사(烈火祖師)가 아끼는 문인으로, 검법이 높고 굳셈을 믿고 못 하는 악한 짓이 없었다. 그가 단련한 검은 이름이 홍주검(紅蛛劍)인데 몹시 매서웠다. 처음에는 그도 법원을 스승으로 모셨고, 열화조사에게도 법원이 이끌어 들였으니, 모태와는 같은 문하의 사형제(師兄弟)인 셈이라 두 사람은 몹시 막역하였다. 모태는 그가 오자마자 푸른 빛이 물러간 것을 보고, 저도 적이 진랑을 두려워한 것이라 여겨 진랑에게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사례하였다. 진랑이 말했다.

"나는 지금 조사 어른(祖師爺)의 명을 받들어 전서(滇西)로 약을 캐러 가는 길일세. 그렇지만 않았다면 그 검객(劍客) 한 패거리쯤 내 손에 씨도 없이 죽지 않았겠나. 아까 그자가 그림자만 보고 달아났으니, 그래도 그자들이 눈치는 있는 셈이지."

한창 크게 허풍을 떨고 있는데, 문득 가까운 곳에서 누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랑아, 부끄러운 줄 좀 알려무나! 남은 그저 네 그 못난 스승의 낯을 보아준 것이고, 게다가 너희 같은 새파란 아랫것들과 손을 섞는 것도 달갑지 않아서 그런 것뿐인데, 너는 이렇게 낯짝도 없이 제 딴에는 우쭐해하는구나!"

진랑은 성미가 타는 불 같은지라 이런 놀림을 어찌 참겠는가. 저도 모르게 크게 성을 내며 욕하였다.

"어디서 굴러먹던 조무래기가 감히 태세신 머리 위에서 흙을 건드리느냐? 어서 굴러 나와 내 손에 죽지 못하겠느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따귀 한 대가 왼뺨에 정통으로 떨어져, 진랑은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막 몸을 돌려 맞서려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그 사람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모태가 보는 앞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다급하기도 하여 욕을 퍼부었다.

"이 못된 놈, 어둠 속에서 남을 치는 것은 영웅이 아니다. 재주가 있거든 나와서 나와 높고 낮음을 가려 보자!"

그 사람이 문득 곁에서 대답했다.

"누가 어둠 속에서 남을 친다더냐? 나는 바로 네 앞에 있다. 네가 자재산(自在山)에서 도를 배운 지 수십 년인데, 그래 눈에 보이지도 않느냐?"

진랑은 듣고 더욱 분하였다. 그 사람과 말을 주고받으면서 선 방향을 똑똑히 들어 두었다가 비검으로 베어 버릴 작정이었다. 그래서 개의치 않는 척하며 대답했다.

"나는 본디 눈이 시원치 않다. 네가 재주가 높고 굳세다면 본모습을 드러내어 나와 높고 낮음을 겨루어 보는 것이 어떠냐?"

"네가 나를 보려면 아직 때가 이르다. 때가 되면 네가 안 보려 해도 그리는 안 될 게다."

진랑은 이때 그 사람이 제 곁에서 여남은 걸음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을 헤아리고,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불시에 손을 한번 폈다. 붉은 줄 같은 검광 다섯 줄기가 그 사람이 선 곳으로 곧장 날아갔다. 그러면서 이 검광을 부려 둘레 수십 장 안을 위아래로 내달리며 쏘게 하니 숲이 온통 붉게 비쳤다. 빛이 닿는 곳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한꺼번에 날렸으나, 한참이 되도록 그 사람이 대꾸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태가 말했다.

"이 빌어먹을 놈은 틀림없이 죽었을 겁니다. 사형(師兄), 저와 함께 절로 돌아가시지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득 또 철썩 하는 소리가 나더니 모태의 얼굴에도 따귀 한 대가 떨어졌다. 모태는 분하기 그지없어 저도 검광을 놓아 그 말소리가 난 곳으로 날려 보냈다. 그 사람은 껄껄 크게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나는 너희 오대파(五臺派) 검법이 높고 굳센 줄로만 알았더니 알고 보니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구나. 번거로운 줄 모르겠거든 검이 몇 자루든 있는 대로 다 놓아 보려무나. 내 구경 좀 하게."

진랑과 모태 두 사람은 화가 나기도 하고 다급하기도 하였다. 그 사람의 재주가 높고 굳세어 저희 비검이 아무 소용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둘 다 거두어들이기가 멋쩍어 검광을 부려 되는대로 쏘아 댈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더욱이 잠시도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고, 두 사람 곁에서 한 대 치지 않으면 비틀고 꼬집었다. 게다가 손속이 몹시 매워서 두 사람은 맞는 대로 아파 못 견딜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그래도 모태가 도저히 맞서기 어려움을 알고 진랑에게 가만히 말했다.

"밝은 칼 밝은 창으로 하는 것이라면 우리도 해 볼 만하지만, 이놈은 사람인지 요괴인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뭣 하러 눈앞의 이 손해를 봅니까?"

진랑도 어쩔 수 없어 이를 핑계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암습을 당할까 두려워 모태에게 단단히 방비하라 이르고, 저마다 검광을 부려 몸을 감싼 채 숲을 빠져 달아났다. 다행히 그 사람은 쫓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자운사까지 달려왔을 때는 이미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절에 들어간 뒤 모태가 지통(智通)에게 진랑을 인사시켰다. 지통은 두 사람이 어찌하여 이토록 낭패한 꼴이냐고 물었다. 모태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였다. 지통은 듣고 나서 한참을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모태가 무슨 까닭이냐고 묻자 지통이 입을 열었다.

"아까 숲속에서 처음에 자네와 검을 겨룬 사람은, 어쩌면 아미파(峨眉派) 검객이 이곳을 지나다가 길에서 고르지 못한 일을 보고 그 주순에게 한 팔의 힘을 보탠 것일 게요. 그 뒤 진 도우(道友)가 오는 것을 보고, 혹 정체가 드러나 원수를 맺게 될까, 또 맞수가 못 될까 두려워 주순을 데리고 달아난 것이지요.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소. 나중의 그 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는 괴상한 사람이 좀 다루기 어렵소. 만일 그 늙은 괴물이 나서서 남의 일에 끼어든 것이라면, 그대나 나 같은 무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노선배(老前輩) 금신나한(金身羅漢) 법원(法元)과 진 도우의 사부(師父)이신 화산 열화조사께서도 손대기 까다롭다 여기실 것이오."

진랑과 모태 두 사람이 대답했다.

"우리가 검을 놓아도 그자가 맞서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그자도 그저 은신법(隱身法)이나 조금 할 줄 아는 데 지나지 않을 텐데, 어찌 그 지경으로 대단하다는 말씀입니까?"

지통이 대답했다.

"두 분이 어찌 아시겠소. 오십 년 전 강호(江湖)에 문득 괴상한 늙은이 하나가 나타났는데, 오로지 남의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했소. 남북 두 길의 검객이든 각 파의 능한 이와 검협이든, 그와 한편이 아니고서는 그의 손에 지지 않은 이가 드물었소. 그 사람은 신검합일(身劍合一)뿐 아니라, 몸의 모습을 마음대로 감추고 드러낼 수 있도록 익혔소. 보통 사람의 눈이나 가릴 뿐인 예사 은신법이 아니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몰라, 행적이 표홀하고 검법이 높고 굳세다 하여 추운수(追雲叟)라는 별호를 지어 붙였소. 나중에야 그의 이름을 알아냈는데 백곡일(白谷逸)이라 하오. 그때 강호 사람들은 참으로 이름만 들어도 담이 떨어지고 그림자만 보아도 넋이 나갔소. 그는 오십 년 전에 그의 늙은 짝 능설홍(凌雪鴻)이 개원사(開元寺)에서 좌화(坐化)한 뒤로 강호에서 그의 자취가 보이지 않은 지 오래라, 모두들 그가 이미 죽었다고 했소.

지난해 열화조사께서 전서에서 화산으로 돌아가시다가 이곳을 지나며, 그가 성도(成都) 저자에서 약을 파는 것을 보았다 하시고 나더러 조심하라 이르셨소. 또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지난날 그의 손에 진 적이 있어, 그가 하루라도 있는 한 당신은 결코 산을 나와 어느 쪽의 싸움에도 끼지 않겠다 했는데, 처음에는 그가 이미 좌화했다고만 들었더니 아직 세상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 오직 지난날의 말을 지켜 산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고요히 닦으며 나오지 않겠다 하셨소. 그래서 나는 문하 제자들에게 까닭 없이 절을 나가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엄히 명했소. 그 뒤로는 그에게 무슨 움직임이 있는 것도 보지 못했소. 며칠 전 모 현제의 제자 장량(張亮)이 한밤에 절을 나가며 성안 어느 부잣집에 가서 쓸 돈을 좀 빌려 오겠다 하더니, 한번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소. 뒤에 사람을 보내 관아 앞과 그 부잣집에 가서 알아보게 했으나 그림자도 소리도 전혀 없었소. 틀림없이 이 늙은 도적의 독수에 당한 것이오. 딴 사람이라면 결코 이렇게 말끔하게 해치우지 못하오."

장량은 모태가 새로 거둔 아끼는 제자였다. 모태는 이런 흉한 소식을 듣자 저도 모르게 다급하고 분하여, 기어이 성안에 가서 소식을 알아보겠노라 하였다. 지통이 얼른 말리며 경솔히 굴지 말라 이르고는 진랑에게 말했다.

"내 절에 연일 사고가 일어나니 형편이 크게 좋지 않소. 진 도우는 여기 오래 머무는 것이 마땅치 않으니 내일 길을 떠나 전서로 가시는 것이 좋겠소. 빈도(貧道)가 그대에게 수고를 끼치겠는데, 길을 돌아 타전로(打箭爐)에 한번 들러, 온신묘(瘟神廟) 방장(方丈) 분면불(粉面佛)에게 청하여 비천야차 마각(馬覺)과 함께 어서 성도로 와서 내게 한 팔의 힘을 보태 달라 해 주시오. 진 도우의 뜻은 어떠하오?"

진랑이 대답했다.

"나는 이번에 사부의 명을 받들어 전서로 가는데, 본디 타전로에도 들러 효월선사(曉月禪師)를 찾아뵐 참이었습니다. 대사께서 저더러 가 달라 하시니 그야말로 한 번 걸음에 두 가지가 다 편합니다. 내일 아침에 바로 길을 떠나겠습니다."

지통은 진랑에게 사례하고, 곧 사람을 시켜 문하 제자 사금강(四金剛)과, 낮에 몸을 의탁하러 온 사천(四川) 길의 큰 도적 비천오공(飛天蜈蚣) 다보진인(多寶眞人) 금광정(金光鼎) · 독각망(獨角蟒) 마웅(馬雄) · 분수서우(分水犀牛) 육호(陸虎) · 요해은룡(鬧海銀龍) 백서(白緖), 그리고 영웅들 모두를 불러, 의논할 일이 있으니 다 함께 대전으로 오라 하였다. 전갈이 간 뒤, 먼저 이 절의 사금강인 대력금강(大力金剛) 철장승(鐵掌僧) 혜명(慧明) · 무적금강(無敵金剛) 새달마(賽達摩) 혜능(慧能) · 다비금강(多臂金剛) 소나타(小哪吒) 혜행(慧行) · 다목금강(多目金剛) 소화신(小火神) 혜성(慧性) 네 사람이 먼저 오고, 뒤이어 금광정 들이 들어와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지통이 말했다.

"내가 너희를 들어오라 한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지난날 우리 조사(祖師)이신 태을혼원조사(太乙混元祖師)께서 아미파 검선(劍仙)과 깊은 원수를 맺으시어 아미산(峨眉山) 옥녀봉(玉女峰)에서 검을 겨루다가, 아미파의 우두머리 검선 건곤정기(乾坤正氣) 묘일진인(妙一眞人) 제수명(齊漱溟)에게 한 팔을 베이셨다. 조사 어른께서는 분을 이기지 못하시고 그 뒤 모산(茅山)에서 십 년을 수련하여 오독선검(五毒仙劍)을 단련해 이루시고, 아미파와 두 번째로 황산 꼭대기에서 검을 겨루기로 약속하셨다. 아미파가 막 지려는 참에 난데없이 또 동해삼선(東海三仙)이 왔으니, 하나는 현진자(玄眞子)요, 둘은 고행두타(苦行頭陀)요, 셋은 바로 그 괴상한 늙은이 추운수 백곡일이다. 그들 세 사람이 난데없이 나와 끼어들어 화해를 붙인다는 것이 공정하지 않아 싸움이 벌어졌는데, 우리 조사 어른께서는 고행두타에게 오독검을 거두어 빼앗기시고, 또 현진자의 무형검(無形劍)을 한 대 맞으시어 이레 뒤에 돌아가셨다. 임종하실 때 문하의 아끼시던 문인 몇과 내 사부 탈탈대사(脫脫大師)를 앞에 불러 검을 단련하는 법을 전하시고, 우리더러 검법을 닦아 이루어 아미파 사람을 찾아 원수를 갚고 한을 씻으라 하셨다. 내 사부께서는 그 뒤 주화입마(走火入魔)하여 그 자리에서 좌화하셨다.

나는 성도에 와서 이 자운사를 애써 꾸려 온 지 십여 해 만에 오늘 이만한 번성을 보았다. 내가 여기서는 한 번도 장사를 벌이지 않고 드나들기를 다 깊은 밤에 한 까닭에, 이곳 관리와 백성과 향신과 장사치들의 믿음을 꽤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보름 전 밤에 모 현제의 문인 장량이 성안 어느 집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여, 꽃을 꺾고 돈을 빌리러 갔다가 한번 가서는 돌아오지 않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 사방으로 알아보아도 간 곳이 없으니 틀림없이 남의 독수에 당한 것이다. 내가 마침 이 일로 애를 태우고 있는데, 며칠 전 이 절에 또 괴이한 일이 하나 터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

모태가 듣고 얼른 무슨 괴이한 일이 났느냐고 물었다. 지통이 말했다.

"현제, 자네가 어찌 알겠나. 이것도 내가 한 생각 자비를 낸 탓에 이런 뒷근심을 남긴 것일세. 며칠 전 내가 환희선전(歡喜禪殿)에서 여러 제자와 더불어 즐기며 놀고 있는데, 문득 비밀 문의 경쇠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네. 처음에는 자네가 돌아온 줄 알았지. 그런데 그것은 귀주(貴州)에서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던 거자(擧子) 열일곱이었네. 길을 돌아 성도에 와서 놀다가, 이 절이 큰 총림(叢林)이라는 말을 듣고 무심코 구경하러 들어온 것이지. 앞쪽의 지객승(知客僧)이 잠깐 방심한 탓에 그들이 운방으로 잘못 들어갔다가, 공교롭게도 밀실의 기관을 건드려 통로(甬道)로 들어온 것일세. 나는 일이 이미 그들에게 들킨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서쪽 하늘로 보내 드릴 수밖에 없었네. 그래서 그들 열일곱을 다 묶어 놓고 똑똑히 심문한 뒤 내 손으로 몸소 끝을 내 주었지.

맨 끝의 거자 하나까지 죽일 차례가 되었는데, 나이가 겨우 열일고여덟이고 생김새가 매우 고운 것이 땅에 꿇어앉아 애타게 애걸하는 통에, 그만 그 울음에 내 마음이 물러지고 말았네. 차마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고 그를 뇌동(牢洞)으로 보내어, 밧줄 한 가닥과 강철 칼 한 자루와 독약 한 봉지를 주고 굴 안에서 스스로 죽으라 했네. 그는 또 두 끼만 더 먹고 배부른 귀신이 되게 해 달라고 애걸하더군. 나는 아예 그 소원까지 들어주자 싶어 만두 서른 개를 더 주었으니, 사흘은 더 살게 할 셈이었지. 나흘째에 가 보아 스스로 죽지 않았으면 그때 다시 손을 쓰려 했네. 그 사람이 몹시 가냘프게 생겼고 그 뇌동이 또 높기도 해서, 나도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네.

그런데 이튿날과 사흗날 잇달아 이틀 밤을 큰 뇌우가 내리더니, 나흘째에 사람을 보내 가 보니 그 어린 거자는 이미 달아나고 없었네. 그는 가냘픈 서생이고 이 사방이 다 우리 사람이니 달아나 빠져나갈까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했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시켜 곳곳의 길목을 지키게 하고 한편으로 바짝 뒤졌으나 자취가 전혀 없었네. 이자가 절 안의 비밀을 다 보았고 나는 또 그의 동행 열여섯을 모조리 죽였으니, 그가 달아난 뒤 관가에 알려 우리를 잡으러 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연일 절 문을 굳게 닫고, 관병이 오면 한바탕 맞아 싸운 뒤에 현제의 사부 계신 곳으로 몸을 의탁하러 갈 채비를 했네. 그런데 이레 여드레가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고, 사람을 보내 관아 앞에서 알아보아도 아무 움직임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네."

다목금강 소화신 혜성이 아뢰었다.

"사부님, 제 생각에 그 거자는 나이 어린 아이라, 놀라고 다급한 끝에 달아나다가 틀림없이 산골 물에 떨어져 죽었거나, 아니면 딴 곳에서 병이 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크게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지통이 말했다.

"말은 그렇다만 우리는 채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추운수가 이미 성도에 나타났으니 조만간 반드시 와서 일을 벌일 것이렷다. 오늘 내가 너희와 여러 영웅을 이리 부른 것은, 모두 오늘부터 길을 나누어 내 청첩을 가지고 도울 이들을 청해 오라는 것이다. 절에 있는 사람은 일 없이 절을 나가서는 안 된다. 청한 이들이 오기를 기다려 다시 의논하자."

사람들은 듣고서 모두 별다른 생각이 없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직 모태만이 원수 갚을 마음이 급하여 기어이 주순을 찾아가 죽기 살기로 겨루겠노라 고집하였다. 지통은 말리다 못해 하는 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그 밤은 아무 일이 없었다.

이튿날이 되자 진랑은 사람들에게 작별하고 전서를 향해 길을 떠났다. 진랑이 떠난 뒤 사람들도 저마다 지통의 편지를 가지고 따로따로 문을 나서 사람을 청하러 갔다.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둔다.

모태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지통에게 알리지도 않고 혼자 자운사를 떠나, 주순을 찾아 원수를 갚으러 성안으로 갔다. 뒷일이 어찌 되는지는 다음 회에서 풀린다.

이 회에 나온 인물과 용어

제8회까지 읽은 분께 보여 드리는 만큼만 적었어요. 뒤의 이야기는 담지 않았어요.

인물

주순 周淳 주랑 · 운중비학
본이름은 주랑, 별호는 운중비학이다. 제로삼영의 한 사람으로 육합검을 쓴다. 지난날 모태의 손가락 둘을 자른 일로 원한을 샀다. 딸 경운은 황산의 찬하대사 밑에 있다.
찬하대사 餐霞大師
황산에 사는 이름난 검선이다. 남편을 여읜 뒤 검선이 되었고, 평생 남자 제자를 거두지 않았다. 주순의 딸 경운이 그 제자다. 동부를 지키는 보배로 지네를 길렀다.
모태 毛太 묘통 · 다비웅
속가 이름은 모태, 별호는 다비웅이다. 닥치는 대로 빼앗고 죽이던 강도였는데, 주순에게 손가락 둘을 잃은 뒤 출가해 비검을 닦았다. 주순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찾아다닌다.
법원 法元 금신나한
오대산의 중이다. 별호는 금신나한이다. 출가한 모태가 사부로 모셨다.
취도인 醉道人
누더기 차림에 붉은 호리병을 지고 다니는 도인이다. 술을 몹시 좋아하고, 이백 리 길을 금세 오갈 만큼 걸음이 빠르다.
장량 張亮 분모란
별호가 분모란인 음적이다. 모태가 새로 거둔 아끼는 제자다. 성도에서 주순의 검에 두 발을 다치고 붙잡혔다.
지통 智通
성도 자운사의 방장이다. 계율이 엄하다고 알려져 있다.
위청 魏靑
모태에게 위협당한 부인의 남편이다.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진랑 秦朗
화산 열화조사가 아끼는 제자다. 성미가 불같다.
열화조사 烈火祖師
화산의 조사다.
추운수 追雲叟
행적이 표홀하고 검법이 높아 추운수라는 별호로 불리는 늙은 검객이다.
능설홍 凌雪鴻
추운수의 늙은 짝이다. 오십 년 전 개원사에서 좌화했다.
분면불 粉面佛
타전로 온신묘의 방장이다.
마각 馬覺 비천야차
지통이 분면불과 함께 청해 오려는 사람이다. 별호는 비천야차다.
효월선사 曉月禪師
타전로에 있는 분이다.
금광정 金光鼎 비천오공 · 다보진인
사천 길을 누비던 큰 도적이다. 자운사로 몸을 의탁하러 왔다.
마웅 馬雄 독각망
사천 길을 누비던 큰 도적이다. 자운사로 몸을 의탁하러 왔다.
육호 陸虎 분수서우
사천 길을 누비던 큰 도적이다. 자운사로 몸을 의탁하러 왔다.
백서 白緖 요해은룡
사천 길을 누비던 큰 도적이다. 자운사로 몸을 의탁하러 왔다.
혜명 慧明 대력금강 · 철장승
지통의 제자로, 자운사 사금강의 한 사람이다.
혜능 慧能 무적금강 · 새달마
지통의 제자로, 자운사 사금강의 한 사람이다.
혜행 慧行 다비금강 · 소나타
지통의 제자로, 자운사 사금강의 한 사람이다.
혜성 慧性 다목금강 · 소화신
지통의 제자로, 자운사 사금강의 한 사람이다.
태을혼원조사 太乙混元祖師 혼원조사
오대파의 조사다. 아미산 옥녀봉에서 검을 겨루다 제수명에게 한 팔을 잃었고, 오독선검을 단련해 다시 겨루었으나 무형검에 맞아 죽었다.
제수명 齊漱溟 건곤정기 묘일진인
아미파의 우두머리 검선이다. 건곤정기 묘일진인이라 불린다.
현진자 玄眞子
동해삼선의 첫째다. 무형검을 쓴다.
고행두타 苦行頭陀
동해삼선의 둘째다.
탈탈대사 脫脫大師
지통의 사부다. 혼원조사에게 검을 단련하는 법을 받았으나 주화입마로 좌화했다.
능설홍 凌雪鴻
백곡일의 늙은 짝이다. 오십 년 전 개원사에서 앉은 채 세상을 떠났다.

문파와 무리

오대파 五臺派
새로 선 문파다. 황산파와는 물과 불 같은 사이다.
아미파 峨眉派
아미산의 검선 문파다.
동해삼선 東海三仙
현진자 · 고행두타 · 추운수 세 검선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사금강 四金剛
지통의 네 제자 혜명 · 혜능 · 혜행 · 혜성을 이르는 말이다.

곳

사천 四川
촉 땅이다. 명나라 말의 난리로 비었다가 이웃 성의 백성을 옮겨 와 되살아났다.
아미산 峨眉山
사천의 명승이다. 절과 도관이 수백에 이른다. 이녕 부녀와 주순이 인적 닿지 않는 뒷산의 석굴에 숨어 산다.
황산 黃山
검선 찬하대사가 사는 산이다.
성도 成都
사천의 큰 고을이다. 성 안팎에 암자와 도관이 늘어서고 옛 자취가 많다.
자운사 慈雲寺
성도 성 밖 숲속에 있는 크고 장엄한 절이다.
화산 華山
열화조사가 있는 산이다.
타전로 打箭爐
온신묘가 있는 고을이다.
온신묘 瘟神廟
타전로에 있는 묘다. 방장은 분면불이다.
옥녀봉 玉女峰
아미산의 봉우리다. 혼원조사와 아미파가 검을 겨룬 곳이다.
모산 茅山
혼원조사가 십 년 동안 수련한 산이다.
환희선전 歡喜禪殿
자운사 안에 숨겨진 전각이다.
귀주 貴州
과거 길에 오른 거자 열일곱이 떠나온 성이다.
전서 滇西
진랑이 조사의 명으로 약을 캐러 가는 곳이다.
개원사 開元寺
능설홍이 좌화한 절이다.
뇌동 牢洞
굴의 이름이다.

법보와 비검

연주노 連珠弩
한 번에 화살 열두 대가 나가는 강노다. 주순이 위태로울 때만 쓴다.
오타매화천운노 五朵梅花穿雲弩
화살 다섯 대를 한꺼번에 쏘는 주순의 절기다.
적음검 赤陰劍
누런 빛을 내는 비검이다. 법원이 모태에게 주었다.
홍주검 紅蛛劍
진랑의 비검이다. 붉은 줄 같은 다섯 줄기 검광을 낸다.
오독선검 五毒仙劍
혼원조사가 모산에서 십 년 단련한 검이다.
무형검 無形劍
현진자의 검이다.

술법과 무공

신검합일 身劍合一
몸과 검이 하나가 되는 경지다. 비검을 닦아 이르며, 멀리서도 사람의 목을 벤다고 한다.
연자비운종 燕子飛雲蹤
주순의 절기로 꼽히는 경공이다.
청정점수 蜻蜓點水
경공의 이름이다. 연자비운종과 나란히 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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