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산검협전 · 제6회

명산에서 영물을 빌려 선협이 밤새 이야기하고 옛 동굴에서 요사한 뱀을 베니 아버지와 딸이 다시 만나다

名山借灵物 仙侠夜话 古洞斩妖蛇 父女重逢

백운대사(白雲大師)는 말을 마치고 벽에서 긴 갑 하나를 내렸다. 정련한 쇠를 부어 만든 것이라 몹시 단단하였다. 또 호리병 안에서 단약 수십 알을 꺼냈다. 그런 다음 갑의 뚜껑을 여니, 안에 길이 두 자 네 치 되는 지네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온몸의 붉은 비늘이 번쩍번쩍 빛나고, 두 알의 눈알은 찻종만 한 크기에 푸른 빛이 눈을 쏘았다. 백운대사가 단약을 갑 안에 넣자 지네가 문득 꿈틀꿈틀 움직이려 하였다. 대사는 급히 뚜껑을 닫았다. 염도인(髯道人)이 말했다.

"이런 영물이라면 그 독이 틀림없이 뱀 요괴보다 사나울 걸세. 찬하대사(餐霞大師)께서 애초에 어찌 거두셨는지 모르겠군."

백운대사가 대답했다.

"찬하대사께서는 어린 시절 규중의 처녀로 계실 때 장난이 아주 심하셨습니다. 어느 날 지네 한 마리를 잡으셨는데, 길이가 고작 두세 치였지요. 그것을 갑 하나에 담아 놓고 날마다 밥알을 가져다 먹이시니, 날이 쌓이자 차츰 자랐습니다. 시집가실 때가 되어서는 이 지네가 거의 대여섯 자나 되었는데, 대사께서는 기어이 혼수로 데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부친께서는 사람들이 듣고 놀랄까 하여 한사코 허락하지 않으셨지요. 대사께서는 하는 수 없이 사람을 시켜 그 지네를 산속으로 메고 가 놓아주게 하셨습니다. 뒤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대사께서는 신니 우담대사(神尼 優曇大師)의 문하에 거두어져 검선(劍仙)이 되신 뒤, 다시 그 산속에 가서 그 지네를 거두어 산을 지키는 보배로 삼으셨습니다. 백여 년 동안 찬하대사께서 부적과 주문으로 단련하시고, 먹는 것은 모두 선단과 영약이었으니, 변화가 끝이 없어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자못 영성이 통하여 함부로 사람을 해치는 법이 없습니다. 찬하대사께서 몹시 아끼시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제가 두 번 세 번 간청하고 한없이 말품을 들이고서야 잠시 빌려 쓰게 해 주셨습니다. 사형(師兄)께서는 얕보지 마십시오."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주순(周淳)이 익힌 무예가 무엇인지도 좀 물어보는 사이에 어느덧 동녘이 희미하게 밝아 왔다. 백운대사가 말했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주순에게 일렀다.

"이번 길은 몹시 흉하고 험하오. 장사(壯士)께서 가시려거든 한쪽에 숨어 벽 위에서 구경하듯 지켜보기만 하고, 부디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오."

말을 마치고 두 사람과 함께 일어나 산골짜기 속으로 걸어갔다.

이때 붉은 해 한 덩이가 벌써 지평선 위로 솟아올라 길이 아주 또렷이 보였다. 한 곳에 이르니 산세가 몹시 험악하고 풀 한 포기 나지 않았다. 백운대사가 염도인에게 말했다.

"여기는 뱀의 굴에서 멀지 않습니다. 제가 앞으로 가서 그것을 끌어내겠습니다. 제가 그것과 싸울 때, 수고스러우시겠으나 사형께서 현영검(玄英劍)으로 돌아갈 길을 끊어 주십시오."

말을 마치고 홀로 앞으로 걸어갔다. 염도인은 주순과 함께 산봉우리로 뛰어올랐다. 보니 산골짜기 가운데 큰 굴이 하나 있는데, 깊고 시커메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백운대사가 굴에서 멀지 않은 데까지 가서 입술을 오므려 쭈쭈 우우 하고 몇 번 소리를 내자, 갑자기 미친 듯한 바람이 크게 일었다. 백운대사는 몸을 홱 돌려 온 길로 달아났다. 말은 더디나 일은 빨랐다. 굴속에서 한 줄기 검은 바람이 지나가더니 큰 뱀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금빛 비늘에 붉은 눈, 길이는 열 장쯤이요 허리는 독만 한데, 달리는 것이 나는 듯하였다. 반 리 남짓 쫓아 나왔을 즈음, 백운이 홱 몸을 돌리며 외쳤다.

"잘 왔다!"

손에서 한 줄기 보랏빛이 날아 나갔다. 뱀은 이 빛을 보자 입에서 한 장 남짓한 불길을 토하였다. 불길과 빛줄기가 한데 얽혔다. 잠시 싸우다가 뱀은 맞서지 못할 줄을 스스로 알고 몸을 돌려 달아났다. 염도인이 곧 손의 현영검을 놓아 보내니, 한 줄기 푸른 빛이 뱀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뱀은 길이 막힌 것을 보고 몸뚱이를 한 무더기로 서렸다. 맹렬한 불과 독한 안개를 뿜어 두 줄기 검광(劍光)과 맞붙었다. 선검(仙劍)이 아무리 매서워도 털끝만큼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백운대사와 염도인은 저마다 산봉우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검광을 부려 뱀과 맞섰으나, 한나절을 싸워도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 백운은 하는 수 없이 염도인에게 신호를 보내 저마다 검광을 거두었다. 뱀은 검광이 문득 물러가는 것을 보고 적이 이미 졌다고 여겨 막 백운대사에게 덮쳐 오려 하였다. 그때였다. 백운대사의 손에서 한 물건이 날아오르는데, 온몸의 붉은 빛이 눈부셔 산골짜기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백운대사가 검으로는 끝내 이길 수 없음을 보고 벌써 갑 속의 지네를 놓아 보낸 것이었다. 지네는 갑을 나오자마자 바람을 맞아 쑥쑥 자라, 길이가 한 장 남짓 되었다. 뱀은 지네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센 적수를 만났음을 알았다. 조금도 늦추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불을 뿜고 안개를 뿜으며 지네와 한데 어울려 싸웠다. 잠시 싸우다가 지네가 뱀의 칠촌 급소를 덥석 물었다. 뱀도 지네의 꼬리를 물었다. 양쪽 다 놓으려 하지 않았다. 뱀은 물린 것이 견딜 수 없어 긴 꼬리로 산의 바위를 쉴 새 없이 이리저리 쓸어 댔다. 얻어맞은 바위가 우박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오르니 참으로 기이한 볼거리였다.

이때 세 사람은 벌써 한곳에 모여 있었다. 염도인이 현영검을 놓아 지네를 한 팔 거들려 하였다. 백운대사는 지네를 다칠까 걱정되어 급히 말렸다. 한창 말이 오가는데, 문득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소리가 한 번 지나가더니, 뱀과 지네가 모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뱀이 물린 아픔을 못 이겨 꼬리를 한 번 휘두른 것이, 골짜기 어귀에 튀어나온 한 장 남짓 높이의 바위를 쳐서 부러뜨렸고, 그것이 공교롭게도 바로 제 머리 위에 떨어져 골이 터져 흩어진 것이었다. 지네도 힘이 다해 죽었다. 백운대사는 염도인과 함께 급히 산 아래로 날아 내려가 검으로 뱀 몸뚱이를 열 몇 토막으로 잘랐다. 지네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백운대사가 말했다.

"제가 처음에 함부로 놓아 보내려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양쪽이 다 상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이제 찬하대사께 어찌 대답을 드려야 하겠습니까?"

염도인이 말했다.

"이 요물은 한 고장에 해를 끼치고 산 목숨들을 모질게 해쳤네. 이제 찬하대사의 지네에 힘입어 이 큰 해를 없앴으니 공덕이 작지 않아. 생각건대 자네와 나를 탓하시지는 않을 걸세."

한창 말이 오가는데, 문득 산머리에서 검은 옷 입은 젊은 여자 하나가 날아 내려왔다. 허리에는 호리병 하나를 찼다. 두 사람 앞으로 걸어와 예를 올리고 말했다.

"제자 주경운(周輕雲)은 찬하대사의 명을 받들어, 백운대사께서 마음 쓰지 마시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지네의 죽음은 정해진 운수이니, 저더러 대사께 안부를 전하고 그 주검을 가지고 돌아오라 하셨습니다."

말을 마치고 지네 곁으로 가서 단약 한 알을 꺼내 그 입 안에 넣었다. 그러자 지네는 일고여덟 치쯤으로 줄어들었고, 그는 그것을 집어 몸에 찬 호리병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백운대사에게 말했다.

"저희 사부(師父)께서 제 아버지 주순이 여기 있다 하셨습니다. 한 번 뵐 수 있겠습니까?"

백운대사는 그제야 그가 주순의 딸인 줄 알고 그를 대신해 몹시 기뻐하며, 주순을 불러 내려오게 하였다. 아버지와 딸이 다시 만났으니 그 기쁨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주순은 마침 찬하대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던 참이었다. 아까 백운대사가 있는 곳에서는 요물을 잡는 일로 바빠 입을 떼지 못하였는데, 이제 딸이 왔으니 딸을 시켜 대신 청하게 하기에 꼭 알맞았다. 그리하여 경운에게 다비웅 모태(多臂熊 毛太)가 원수를 갚으러 찾아다닌다는 것과 자기가 성도(成都)로 가는 일을 말하고, 찬하대사께 산을 내려와 주십사 대신 청하라고 일렀다. 경운이 말했다.

"그런 작은 일로 어찌 사부님을 수고롭게 하겠습니까. 저도 이번에 그 일 때문에 왔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따라 산에 오른 뒤로 이미 선검을 다 이루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검을 배우려다 이루지 못하셨기에 제가 여러 번 대사께 가르쳐 주십사 청하였으나, 대사께서는 아버지가 당신과 인연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대사께서는 평생 남자 제자를 거두신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 기연이 이르면 저절로 이름난 스승을 만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그저 성도로 가시기만 하면 앞길에 맞아 이끌어 줄 사람이 절로 있을 것이라고 아버지께 이르라 하셨습니다. 저도 산에 돌아가 명을 받든 일을 아뢴 뒤에 성도로 가서 아버지를 도와 그 모태를 죽이겠습니다."

주순은 듣고 나서 저도 모르게 마음속의 돌덩이 하나가 땅에 떨어진 듯하였다. 경운은 세 사람에게 하직하고 산으로 돌아가 명을 받든 일을 아뢰었으니, 이는 더 말하지 않는다.

주순은 백운대사와 염도인이 둘 다 이름을 이룬 검선이라는 생각에 스승으로 모실 뜻이 생겼다. 백운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나이 마흔을 넘었어도 바탕과 마음씨가 다 좋으니 머지않아 우리 무리의 사람이 될 것이오. 어찌 한때를 서두르시오? 지금 검객(劍客)의 갈래가 몹시 많아 때때로 다툼이 일어나오. 곤륜(崑崙)과 아미(峨眉) 말고도 지금 새로 선 황산파(黃山派)와 오대파(五臺派)가 물과 불 같으니, 모두 사(邪)와 정(正)이 나란히 설 수 없는 까닭이오. 이번에 모태가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은 실마리일 뿐, 뒤의 일이 한참 많소."

말을 마치고 마른 나뭇가지와 잎을 많이 주워 뱀 몸뚱이를 불살랐다. 염도인은 사부 정허노조(靜虛老祖)의 명을 받들어 선근(仙根)을 넉넉히 타고난 사람 하나를 급히 제도하러 가야 한다고, 오대파 사람들이 그를 끌어들여 가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입술을 오므려 길게 한 번 휘파람을 부니, 구름 끝에서 큰 선학(仙鶴) 한 마리가 날아 내려왔다. 염도인은 그 위에 걸터앉아 "또 봅시다" 한마디 하고는 곧 하늘을 찌르며 날아올랐다. 주순은 그제야 그날 산속에서 뱀과 싸우던 선학이 바로 염도인이 타고 다니는 것임을 알았다. 딸 경운의 말을 듣기는 하였으나 끝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이참에 백운대사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백운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그저 먼저 가시오. 이번 길은 결코 탈이 없소. 어려움을 만날 때가 되면 내가 절로 가서 그대를 구할 것이오. 지금은 아직 그럴 것까지 없소."

주순은 속으로 반신반의하였으나, 하는 수 없이 홀몸으로 하직하고 길에 올랐다.

며칠을 가서 성도에 다다랐다. 곳곳에서 모태를 수소문하였으나, 다들 그런 중은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주순은 하는 수 없이 거기서 경운이 오기를 기다렸다. 석 달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때는 벌써 정월 하순이었다. 성도는 성 안팎에 암자와 도관이 숲처럼 늘어서고 옛 자취가 매우 많았다. 어느 날 객점 방에 답답하게 앉았다가 몹시 무료하여,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남문 밖 무후사(武侯祠)로 구경을 갔다.

이 회에 나온 인물과 용어

제6회까지 읽은 분께 보여 드리는 만큼만 적었어요. 뒤의 이야기는 담지 않았어요.

인물

주순 周淳 주랑 · 운중비학
본이름은 주랑, 별호는 운중비학이다. 제로삼영의 한 사람으로 육합검을 쓴다. 지난날 모태의 손가락 둘을 자른 일로 원한을 샀다. 딸 경운은 황산의 찬하대사 밑에 있다.
경운 輕雲
주순의 외동딸이다. 영경과 꼭 닮았다고 한다. 선골을 타고났다 하여 황산의 찬하대사가 제자로 데려갔다.
찬하대사 餐霞大師
황산에 사는 이름난 검선이다. 늙은 여도사로, 주순의 딸 경운을 제자로 데려갔다.
모태 毛太 묘통 · 다비웅
속가 이름은 모태, 별호는 다비웅이다. 닥치는 대로 빼앗고 죽이던 강도였는데, 주순에게 손가락 둘을 잃은 뒤 출가해 비검을 닦았다. 주순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찾아다닌다.
백운대사 白雲大師 원원
운령산의 암자에 사는 마흔에서 쉰쯤의 여승이다. 이름은 원원이고 이원화를 사형이라 부른다. 삼 년째 운령산의 뱀 요괴와 싸워 왔다.
이원화 李元化 염선 · 염도인
별호가 염선인 검선이다. 얼굴 가득 곱슬 수염이 났다. 현영검을 쓰고, 백운대사의 사형이다. 조연아를 제자로 거두었다.
정허노조 靜虛老祖
이원화의 사부다.
신니 우담 神尼 優曇
찬하대사를 문하에 거둔 분이다.

문파와 무리

곤륜 崑崙
검객의 갈래 가운데 하나다.
황산파 黃山派
새로 선 문파다. 오대파와는 물과 불 같은 사이다.
오대파 五臺派
새로 선 문파다. 황산파와는 물과 불 같은 사이다.

곳

아미산 峨眉山
사천의 명승이다. 절과 도관이 수백에 이른다. 이녕 부녀와 주순이 인적 닿지 않는 뒷산의 석굴에 숨어 산다.
황산 黃山
검선 찬하대사가 사는 산이다.
성도 成都
사천의 큰 고을이다.
무후사 武侯祠
성도 남문 밖에 있는 사당이다.

법보와 비검

현영검 玄英劍
염도인이 부리는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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