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산검협전 · 제1회

달밤에 외로운 배를 저어 원숭이 우는 무협에서 잔도에 오르고 하늘 끝에서 지기를 만나 집을 옮겨 벗과 함께 명산에 숨다

月夜棹孤舟 巫峡啼猿登栈道 天涯逢知已 移家结伴隐名山

사천(四川)의 아미산(峨眉山)이라 하면 촉(蜀) 땅에서도 이름난 명승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서촉(西蜀)의 산수는 기이한 곳이 많되 그 가운데서도 아미가 으뜸이라 하였으니, 과연 헛말이 아니다. 서촉은 신을 받드는 풍속이 가장 성한 곳이라 산 위의 사당과 절과 도관이 수백을 밑돌지 않고, 해마다 천 리 길을 멀다 않고 참배하러 오는 선남선녀가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 산은 높고 물은 빼어나며 겹겹의 봉우리와 첩첩의 멧부리가 온갖 기상을 다 갖추었으니, 오로지 산을 노닐고 경치를 구경하러 오는 이도 실로 적지 않았더라.

뒷산의 풍경은 더욱 그윽하고 기이하다. 예로부터 깊은 산 큰 늪에는 용과 뱀이 많이 나고, 깊은 숲 그윽한 골짜기는 범과 표범, 승냥이와 이리가 깃드는 곳이라 하였다. 뒷산에 노닐러 간 이는 흔히 한번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제멋대로 억측을 늘어놓았으니, 범이나 이리나 요괴에게 잡아먹혔다는 이도 있고 신선과 부처가 제도하여 데려갔다는 이도 있어, 말만 분분할 뿐 어느 것이 옳은지는 끝내 가려지지 않았다. 사람이란 어디까지나 피와 살로 된 몸이요, 뜻이 여린 자가 열에 여덟아홉이다. 앞 수레가 엎어지는 것을 본 터라 뒷산을 찾는 발길도 차츰 끊어지고 말았다. 그 덕을 본 것은 도리어 뒷산에서 고요히 수양하던 고인(高人)과 기사(奇士)들이었으니, 그들은 속세의 번거로움을 숱하게 덜고 그 신령한 산 빼어난 경계의 맑은 복을 홀로 누리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한다.

사천은 명나라 말 장헌충(張獻忠)의 난을 겪은 뒤로 열 집에 아홉이 비어, 수백 리를 가도 사람 사는 연기 한 줄기 없는 곳이 허다하였다. 하늘이 낸 곳간(天府之國)이라던 땅이 음산한 바람만 스산히 부는 귀신 저자와 다름없이 되고 만 것이다. 만청(滿淸)이 관문 안으로 들어온 뒤, 지방을 맡은 대신이 조정에 아뢰어 사천에 가까운 여러 성, 곧 양호(兩湖)와 강서(江西)와 섬서(陝西)의 백성을 사천으로 옮기게 하였다. 사천은 본디 땅이 넓고 물산이 넉넉하여 없는 것이 없는 곳이라, 옮겨 간 백성들은 이곳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잊었다는 기색이 완연하였다. 손이 제집에 돌아온 듯 편안히 여기니, 사람 사는 연기가 빽빽하던 옛 모습도 차츰차츰 되살아났다.

강희(康熙)가 즉위한 이듬해의 일로 기억한다. 무협(巫峽)에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배를 부리는 사공들 말고는 아비와 딸 두 사람뿐, 짐이라야 한 어깨에 멜 만큼이라 몹시 단출하고 쓸쓸하였다. 다만 따로 놓인 봇짐 하나만은 유난히 묵직하여, 안에 쇠붙이라도 든 듯하였다.

노인은 나이 겨우 쉰이건만 수염과 머리털이 벌써 온통 희었다. 고개를 들어 사람을 볼 때면 눈빛이 사방으로 쏘아졌고, 얼굴 가득한 주름살은 한눈에도 근심과 환난을 겪을 만큼 겪은 사람임을 일러 주었다. 소녀는 이제 겨우 열두셋인데 빼어나게 곱게 자라 있었다. 노인 곁에 기대어 나직하고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안개 낀 산빛을 가리키며 이것저것 묻는 모습에, 티 없는 천진함과 어버이를 따르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느덧 저녁 안개가 사방에서 일고 어스름이 아득히 깔리는데, 산모퉁이 곁으로 밝은 달 한 덩이가 걸려 올랐다. 맑은 빛이 사방으로 쏟아져 사람의 눈썹과 머리털까지 비추었다. 노인이 문득 소리 높여 외쳤다.

"달 밝은 밤에 고국을 돌아보는 이 마음을 어이 견디리오! 강산은 이러하건만, 어느 날에야 우리 집안의 옛것을 되찾는단 말이냐!"

말끝이 처량하더니 늙은 눈물이 두 뺨에 가득하였다. 소녀가 말했다.

"아버지, 또 상심하시네요. 천하의 일은 저마다 미리 정해진 바가 있다는데, 혼자 슬퍼하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부디 아버지 몸부터 돌보세요."

한창 말이 오가는데 사공이 다가와 아뢰었다.

"어르신, 날이 벌써 저물었습지요. 저 앞이 바로 이름난 오아취(烏鴉嘴)온데, 거기 마을과 저자가 있습니다요. 배를 대고 쉬면서 뭍에 올라 술과 밥이나 좀 사 먹으려 합니다요."

노인이 대답했다.

"그리하게나. 자네들은 어서 다녀오게. 나는 오늘 좀 고단하여 뭍에는 오르지 않겠네."

사공의 말이 끝났을 때 배는 벌써 닿을 곳에 이르러 있었고, 사공들은 저마다 뭍으로 올라갔다.

때마침 달이 대낮처럼 밝았다. 부녀 두 사람은 지니고 온 술과 안주를 손수 뱃머리에 차려 놓고 마주 앉아 잔을 기울였다. 한창 무료하던 차에, 문득 멀리 숲 속에서 백의인(白衣人) 하나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달빛 아래라 그 모습이 유난히 또렷하였고, 걸음걸음 가까워졌다. 그는 걸으며 노래를 부르는데, 가락이 맑고 높아 쇠와 돌이라도 쪼갤 듯하였다. 이윽고 배 댄 곳에서 멀지 않은 데까지 이르렀다. 노인은 불현듯 흥이 일어 소리쳐 불렀다.

"좋은 밤 밝은 달에 이 경치를 저버려서야 쓰겠소이까. 내 배에 술도 있고 안주도 있으니, 거기 노형(老兄), 내려와 몇 잔 함께 기울이지 않으시려오?"

백의인은 한창 흥겹게 노래하다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곳은 거의가 사천과 호남 사람이 사는 데라 북쪽 사람은 좀체 보기 어렵거늘, 저 사람은 말씨가 온통 경성(京城) 투로구나. 필시 내 고향 사람이렷다. 저편에서 청하는 터이니, 몇 잔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겠다.'

생각하며 걷는 사이 어느덧 배 위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모아 자세히 보더니, 돌연 서로 얼싸안고 목 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노인이 말했다.

"경성에서 한번 헤어진 뒤로 예서 다시 만날 줄 뉘 알았겠는가! 사람은 예와 같건만 산하는 온통 달라졌으니, 어찌 애가 끊어지지 않으리!"

백의인이 말했다.

"양주(揚州) 싸움에서 형님께서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니게 되셨다 들었거늘, 이 타향에서 뵐 줄 뉘 알았겠습니까. 하늘 끝을 떠도는 이 아우에게 지기(知己) 한 사람이 더 생겼으니, 이제 제 길도 외롭지 않다 하겠습니다. 이 아가씨는 필시 따님이시겠지요?"

"현제(賢弟)를 보자 놀랍고 기쁜 마음이 한꺼번에 북받쳐, 딸아이 영경(英瓊)에게 인사시키는 것도 잊었구먼."

노인은 그러고는 소녀를 불렀다.

"영경아, 이리 와서 네 주 숙부께 인사 올리거라."

소녀는 아버지의 말에 건너와 넙죽 엎드려 절하였다. 백의인은 반절로 받고 노인에게 말했다.

"현질녀(賢姪女)의 얼굴에 영기가 가득합니다. 과연 장수 집안의 딸이니, 형님의 절예(絶藝)는 틀림없이 이을 사람이 있겠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현제는 모르는 말일세. 이 어리석은 형은 무예를 조금 안 탓에 집이 망하고 사람이 죽는 꼴을 보았네. 더구나 저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제 어미는 나를 따르다 난군 속에서 죽었고, 십 년을 쫓기며 떠도느라 몸 붙일 곳이 조금도 없었다네. 저 아이는 늘 무예를 가르쳐 달라고 나를 졸라 대네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 복이 두텁다는 생각을 굳힌 지 오래일세. 게다가 저 아이는 두 눈에 노기가 너무 짙어, 무예를 익히면 뒷날 반드시 일이 많을 것이야. 내 무예라야 그저 보통일 뿐이고 천하에는 이인(異人)이 숱하니, 배운 것이 정밀하지 못하면 도리어 제 몸 죽일 화를 부르는 법이지. 이 형에게는 딸이라고 저 아이 하나뿐이라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 수도 가르치지 않았다네. 그저 뒷날 글 읽는 선비 하나를 데릴사위로 맞아 내가 서쪽으로 돌아가는 길이나 보내 주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

"말씀은 그러하오나, 이 아우가 현질녀의 생김새를 보니 결코 댕기머리 처녀로 늙어 죽을 사람이 아닙니다. 뒷날 두고 보시지요."

소녀는 백의인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운 눈썹이 치켜 오르고 기쁜 빛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러다 늙은 아버지를 한번 바라보고는, 저도 모르게 다시 얼마쯤 원망 어린 빛을 내비쳤다.

백의인이 다시 물었다.

"형님께서는 이번에 무슨 뜻을 품고 사천에 드셨습니까?"

"나라는 깨지고 집은 망했네. 운수가 이러하거늘 내게 무슨 뜻이 더 남았겠는가. 그저 이 먼 곳에 화를 피하러 왔을 따름일세."

백의인은 그 말에 기뻐하며 말했다.

"이 아우가 사천에 든 지도 어언 삼 년입니다. 아미 뒷산에서 석굴 하나를 찾아 두었는데, 더없이 그윽하고 고요하며 풍경이 기이하게 빼어납니다. 저는 어제야 산에서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글방 아이 몇을 가르치고 있었기에, 돌아와 이것저것 거두는 대로 뒷산 석굴에 들어가 숨어 살 채비를 하던 참에 오늘 다행히 형님을 뵈었습니다. 다만 그곳은 몹시 깊고 외져 사람 발자취가 닿지 않고 사나운 짐승이 아주 많습니다. 형님께서 현질녀가 무서워할 것을 꺼리지 않으신다면, 우리 세 사람이 함께 들어가 숨어 살며 때를 기다리지요. 형님 뜻은 어떠하십니까?"

노인은 그런 좋은 곳이 있다는 말에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하면 더없이 좋겠네. 한데 예서 그 산까지는 얼마나 되는가?"

"뭍길로 가면 팔구십 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공들을 돌려보내고 제 집에 오시어 이틀쯤 묵으신 뒤, 저와 함께 뭍길로 걸어가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면 현제가 먼저 가게나. 이 형은 오늘 밤은 배에서 묵고, 내일 사공들을 돌려보낸 뒤에 댁으로 찾아가겠네. 한데 현제는 지금 어디 사는가? 자네나 나나 난을 피해 숨은 몸인데, 성과 이름은 바꾸었는가?"

"이름은 바꾸었으되 성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내일 앞마을에 오시어 글방 훈장 주순(周淳)을 물으시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날이 늦었습니다. 내일은 제게 약속이 하나 있어 마중을 나가지 못합니다. 다행히 예서 멀지 않으니, 집에서 형님 오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백의인은 두 사람과 헤어져 홀로 돌아갔다.

백의인이 떠난 뒤 소녀가 물었다.

"저 주 숙부님이,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시던, 아버지와 이름을 나란히 하여 사람들이 제로삼영(齊魯三英)이라 부른다는 그 주랑(周琅) 숙부님이세요?"

"그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느냐. 그 옛날 나 이녕(李寧)과 네 두 숙부 양달(楊達), 주랑은 제·노·연·예(齊魯燕豫) 일대에서 위명이 쩌렁쩌렁하였다. 네 양 숙부는 명나라가 망한 뒤로 마음에 옛 나라를 품고 있다가 원수의 모함에 걸려 해를 입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나와 네 주 숙부 둘뿐이거늘, 이 목을 보전할 수 있을지조차 아직 모르는구나. 이번 아미산 길에 좋은 길벗을 얻었으니 기쁜 일이다. 내 걱정이 한결 줄었구나. 얘야, 일찍 자거라. 내일 아침에 뭍에 오르자꾸나."

말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두 사공이 술에 흠뻑 취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녕이 사공들에게 일렀다.

"이곳에 내 친척 하나가 있는 것이 생각났네. 거기 가서 몇 달 묵을 작정이니 내일 아침에 뭍에 오르겠네. 자네들 오는 길에 수고가 많았으니 뱃삯은 셈대로 치러 주고, 따로 술값으로 은자 넉 냥을 얹어 주겠네. 자네들도 일찍 쉬게나."

사공들은 이 말을 듣고 황급히 사례하고는 저마다 자리에 들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영경 부녀는 일어나 봇짐과 보따리를 손수 짊어지고 사공들과 작별한 뒤 곧장 앞마을로 향하였다. 반 리쯤 갔을까, 길가에서 동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나이는 열한두 살쯤, 얼굴은 관옥 같고 머리는 두 갈래로 뿔처럼 틀어 올렸다. 때는 겨우 칠팔월이나 촉 땅은 본디 날이 더운지라, 푸른 무명 짧은 저고리와 바지 한 벌만 걸치고 있었다. 동자는 두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마주 나오며 물었다.

"오시는 두 분은 혹 제 선생님 주순을 찾아오신 분들이 아니십니까?"

"우리가 바로 주 선생을 찾아가는 길이다. 너는 어찌 알았느냐?"

동자는 이녕의 대답을 듣자 허둥지둥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사백(師伯)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어젯밤 선생님께서 돌아오셔서는 기뻐서 밤새 한잠도 못 주무시고, 오아취에서 사백과 사저(師姐)를 만났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새벽같이 일어나셨는데, 어제 남과 한 약속이 있어 마중을 못 나오시니 저더러 여기서 사백께 길을 안내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저 앞이 바로 선생님 글방입니다. 선생님은 약속한 데 가셨지만 금방 돌아오실 테니, 사백께서는 먼저 들어가 잠시 앉으셔서 아침 요기나 좀 하십시오."

이녕은 이 동자가 생김새가 범상치 않고 말솜씨가 야무진 것을 보고 몹시 기특히 여겼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덧 주순의 집이었다. 대울타리에 띠집이었으나 깨끗하고 아담하게 치워져 있었다.

동자는 다시 안에서 그릇과 젓가락 세 벌을 내오더니, 절인 고기를 큰 쟁반 가득 썰고 피두부 한 접시에 술 한 병을 차려 부녀를 윗자리에 모셨다. 저는 아래쪽 옆자리에 몸을 모로 하고 앉아 모시며 권하였다.

"사백, 아침 술을 조금 드시지요."

이녕이 무엇을 물으려는데, 동자는 어느새 뒤로 가서 식초 국물 국수 세 그릇과 절인 채소 한 쟁반을 받쳐 들고 나왔다. 어린 나이에 손님 대접이 이토록 살뜰한 것을 보고 이녕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술과 안주를 조금 들며 동자에게 물었다.

"어린 세형(世兄), 네 이름이 무엇이냐? 언제부터 네 사부(師父)를 따라 글을 읽었느냐?"

동자가 대답했다.

"저는 조연아(趙燕兒)라고 합니다. 제 아버지는 본디 명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였는데 이틈(李闖)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외삼촌과 함께 이곳으로 달아나 오셨는데, 뜻밖에 외삼촌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저희 집은 몹시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저는 남의 집 소를 치고, 어머니는 큰 집의 일거리를 맡아 하시며 그럭저럭 날을 보냈습니다. 삼 년 전에 주 선생께서 이곳에 오셨는데, 제가 벼슬하던 집안의 자손인 것을 가엾이 여기셔서 그 어른을 스승으로 모시게 하시고, 늘 저희 모자를 도와주시며 날마다 저에게 글과 무예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 선생님께는 슬하에 아들이 없고 경운(輕雲)이라는 딸 하나만 있습니다. 지난해 마을 밖에 늙은 여도사 한 분이 오셔서 저도 제자로 거두시겠다고 했는데, 저는 늙으신 어머니가 계셔서 멀리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도사가 문득 사매(師妹)를 보시더니 선생님을 찾아와 반나절을 이야기하시고는 사매를 데리고 가 버리셨습니다. 무슨 황산(黃山)인가로 도를 배우러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섭섭해서 선생님께 사매를 찾아 데려오시라고 몇 번이나 졸랐는데, 선생님은 늘 아직 때가 이르다고만 하십니다. 저 혼자 가려 해도 선생님은 황산 가는 길을 일러 주지 않으십니다. 저는 조금만 더 크면 꼭 가서 사매를 찾아 데려올 겁니다. 제 사매는 이 사저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다만 사매의 눈썹에는 사저처럼 이 붉은 점 두 낱이 없을 뿐입니다."

이녕은 다 듣고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다가, 무슨 무예를 할 줄 아느냐고 다시 물었다. 연아가 말했다.

"저는 타고난 바탕이 좋지 못해서 육합검(六合劍) 한 벌을 할 줄 알고, 표창(鏢)을 던지고 받을 줄 알 뿐입니다. 선생님 말씀이 사백께서는 솜씨가 대단하시다던데, 며칠 지나면 사백께서도 저를 꼭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한창 이야기하는데 주순이 벌써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연아는 얼른 두 손을 늘어뜨리고 모시고 섰다. 영경이 건너와 세숙(世叔)께 절을 올렸다. 이녕이 말했다.

"현제, 경하하네. 이렇게 좋은 제자를 거두었으니."

주순이 받았다.

"이 아이가 타고난 바탕은 제법 총명하고 품성도 못하지 않습니다만, 입만 열면 말하기를 좋아하여 사람을 보면 그칠 줄을 모릅니다. 이 반나절 사이에 저 아이의 이력은 제가 소개할 것도 없이 제 입으로 다 늘어놓았겠지요."

"제 신세는 벌써 내게 다 말했다네. 그건 그렇고, 현제도 이제 곧 쉰이 될 사람이 어찌 조카딸을 그리 쉽게 남에게 보내 기르게 했는가? 무슨 까닭인가?"

"연아가 수다스럽다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형님의 조카딸이 이번에 간 것은 실로 그 아이의 복입니다. 지난해 연아가 늙은 여도사 한 분을 데리고 와서 저를 만나게 하였는데,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서야 바로 황산의 찬하대사(餐霞大師), 이름난 검선(劍仙)이신 줄 알았습니다. 그분이 형님의 조카딸 경운을 보시고 선골(仙骨)을 타고났다 하시며, 데려가 마지막 대의 제자로 삼겠노라 저와 의논하셨습니다. 본디 연아까지 함께 데려가려 하셨으나, 그 아이는 늙은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있어야 하므로 경운만 먼저 데려가셨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는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는 법이거늘, 이 아우가 마다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녕은 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경은 아버지가 무예를 가르쳐 주지 않는 탓에 어린 속이 몹시 언짢던 터라, 주순의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눈썹이 치켜 오르고 낯빛이 들떠 속으로 가만히 궁리를 하였다. 주순이 벌써 알아차리고 영경에게 말했다.

"현질녀는 아마 남이 사냥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동한 게로구나? 네 세매(世妹)의 바탕으로 말하자면 그 또한 범상치는 않으니, 내 겸손을 떨 것도 없느니라. 허나 골격과 생김새로 말하자면 어찌 현질녀의 절반이나 따르겠느냐. 찬하대사께서 너를 보시면 반드시 곱게 보실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머지않아 인연이 저절로 너를 찾아올 터이니, 그때는 네 아비 뜻대로도 되지 않으리라."

"현제가 또 조카딸을 놀리는구먼. 한가한 말은 그만두세. 우리 아미산 길은 언제 떠나는가? 연아도 가는가?"

주순이 대답했다.

"제게 아직 처리할 자질구레한 일이 많습니다. 길어야 열흘쯤이면 우리가 길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아는 늙은 어머니가 계시니, 배우고 싶어 하는 그 아이의 바람은 잠시 막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연아는 사부가 저를 함께 데려가지 않는다는 말에 분하여 울음을 터뜨렸다. 주순이 타일렀다.

"그럴 것 없다. 신선이든 부처든 영웅이든, 불충하고 불효한 자는 없는 법이니라. 내가 이번에 간다고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행히 서로 떨어진 것이 수십 리 길에 지나지 않으니, 내 다달이 꼭 한 번씩 와서 네게 글과 무예를 가르쳐 주마. 다만 예전처럼 아침저녁으로 함께 지내지 못할 따름이다."

연아는 그 말을 듣고 헤아려 보아도 어쩔 도리가 없어 눈물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녕이 물었다.

"현제 글방의 학동이 설마 연아 하나뿐인가?"

"저는 그저께 아미산에서 돌아오며 벌써 산에 들어갈 생각을 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주인과 손이 서로 아주 잘 지내 온 터인데, 마침 돌아오는 길에 가난한 선비 한 사람을 구하였습니다. 이름이 마상(馬湘)인데 인품과 학문이 다 훌륭합니다. 제가 저 앞 문창각(文昌閣)에 그 사람이 묵을 곳을 구해 주고, 학생들을 모두 그에게 넘겨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한데 바로 그날 밤에 형님을 뵐 줄 뉘 알았겠습니까."

"그랬구먼. 어쩐지 연아 말고는 학생이 하나도 안 보인다 했네."

"연아도 그리로 보낼 참이었습니다만, 형님께서 집에 오시는데 수염 긴 종 하나 없으니,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를 맡는다는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모두 저녁밥을 들었다. 연아는 부녀의 이부자리까지 잘 펴 주고 나서 제 발로 돌아갔다.

영경만은 낮에 들은 숱한 말들 때문에 침상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때는 벌써 삼경(三更) 무렵, 옆방에서 주순과 연아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그 스승과 제자가 방문을 열고 뜰로 나가는 기척이 났다. 영경은 가만히 일어나 창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저마다 손에 장검(長劍) 한 자루씩을 들고 뜰에서 마주 서서 검을 추고 있었다. 연아의 검은 조금 짧다 해도 석 자 남짓은 되었다. 처음 출 때에는 그래도 사람 그림자가 얼마간 보였다. 허나 토끼가 뛰고 송골매가 내리꽂히듯 출수록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차가운 빛 두 줄기와 상서로운 눈 한 덩이가 뜰 안을 이리저리 구르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문득 주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아야, 똑똑히 보거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달빛 아래 사람 그림자가 둘로 갈리더니, 흰 그림자 한 덩이가 차가운 빛 한 줄기를 끌고 별이 달리고 번개가 치듯 뜰 앞에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계수나무 한 그루로 날아들었다. 뒤이어 우지끈 소리와 함께 남쪽으로 뻗은 큰 가지 하나가 잘려 떨어졌다. 가지가 끊기는 서슬에 나무 몸통이 흔들리자 계수나무 꽃이 비 오듯 우수수 흩어져 내렸다. 눈을 모아 다시 보니, 뜰 앞에는 여전히 그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온갖 소리가 다 잠든 이 고요 속에 문득 실바람 한 줄기가 스치자, 처마 끝의 풍경(鐵馬)이 저 홀로 뎅그렁 울었다. 영경은 그만 눈이 굳고 넋이 나가도록 바라보았다. 주순이 연아에게 이르는 것이 보였다.

"방금 그 마지막 한 수는 이름하여 천운나월(穿雲拿月)이라, 육합검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한 수니라. 뒷날 고수를 만나거든 얼마든지 이 수를 써서 지는 가운데서 이길 수 있다. 나는 첫째로 네 효성을 어여삐 여기고, 또 네가 남달리 총명한 것을 보았기에 내 평생의 절기(絶技)를 네게 전하는 것이다. 이제 이틀만 더 있으면 나는 네 사백과 함께 산에 들어간다. 너는 아침저녁으로 사람 없는 곳에서 부지런히 되풀이해 익히거라. 이 스승은 이만 자러 가겠다. 내일 밤에 다시 와서 짚어 주마."

말을 마치고 주순은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으니, 이는 더 말하지 않는다. 연아도 주순이 간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이틀, 영경은 밤마다 일어나 훔쳐보았다. 그러고는 몇 번이고 아버지에게 검을 배우겠노라 졸랐다. 이녕은 딸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데다 주순까지 달래고 권하니 마음이 얼마간 움직여 딸에게 일렀다.

"검은 병기의 조상이라 배우기가 지극히 어려우니라. 첫째는 꾸준히 익혀야 하고, 둘째는 기를 단련하고 정신을 모아 마음이 고인 물 같아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갖추고도 이름난 사람의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너는 어려서부터 곱게만 자라 몸의 힘을 한 번도 단련한 적이 없으니 실로 손을 대기가 어렵구나. 네가 기어이 배우겠다 하니, 산에 들어가거든 날마다 이른 아침에 먼저 기를 기르는 공부와 내공(內功)에서 마땅히 밟아야 할 절차부터 배우거라. 이삼 년 뒤에야 검법(劍法)을 전해 줄 수 있다. 그 거친 성미로 그때 가서 또 나를 귀찮게 하지는 말거라."

영경은 듣고도 속으로는 얼마쯤 승복할 수 없었다. 저보다 어린 연아가 벌써 저만큼 배운 것을 본 터라, 아버지의 말이 일부러 저를 어렵게 하려는 것만 같았다. 막 입을 열려는데 주순이 말했다.

"네 아버지 말씀이 지당하다. 상승(上乘)의 검법을 배우려면 말씀대로 기를 단련하여 하나로 돌리지 않고서는 아니 된다. 너는 여러 밤 내가 연아에게 검을 전하는 것을 훔쳐보았기에 쉽게 여기는 모양이나, 연아가 검을 배울 때의 고초는 모르는구나. 나는 네가 훔쳐볼 때의 그 정성스러운 마음을 보았기에 뒤에서 네 아버지를 몇 번이나 달랬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겨우 허락을 얻은 것이니라. 네 아버지의 검법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 말씀에는 털끝만 한 거짓도 없으니, 현질녀는 뜻을 그릇 알아듣지 말거라."

이녕이 말을 이었다.

"경아(瓊兒), 너는 네가 총명하다고만 여기지 말거라. 검을 배우는 일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정신을 모으고 기를 기르지 않고서는 아니 된다. 다 이루고 나면 열 장 안팎에서 먼지와 모래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도 무슨 소리인지 다 가려 듣게 된다. 네가 번번이 훔쳐본 것만 해도 그러하다. 네 세숙이 어찌 알았겠느냐? 바로 그 때문이니라. 이런 눈앞의 일조차 모른다면 무슨 검법을 논하겠느냐? 훔쳐본 것이 너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다른 자가 창 앞에 엎드려 찌르려 했다면 검을 추는 그 사이에 남의 암수에 당하지 않았겠느냐?"

영경은 두 사람의 말에 졌다고는 하였으나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다시 몰래 연아에게 가서 물어보니, 과연 연아는 검을 배우기에 앞서 숱한 시달림을 겪고 많은 고된 공을 들였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마음으로나 입으로나 승복하였다.

세월은 쉬이 흘러 어느덧 떠나는 날이 되었다. 학동 한 무리와 저마다의 어버이들, 그리고 새 훈장 마상이 모두 나와 배웅하였다. 연아는 홀로 이십여 리를 따라 나서며 배웅하다가, 이씨와 주씨 세 사람이 몇 번이나 재촉한 뒤에야 눈물을 뿌리며 돌아섰다.

이 회에 나온 인물과 용어

제1회까지 읽은 분께 보여 드리는 만큼만 적었어요. 뒤의 이야기는 담지 않았어요.

인물

영경 英瓊
이녕의 외동딸이다. 열두세 살쯤이고 눈썹에 붉은 점이 둘 있다.
이녕 李寧
딸 영경과 함께 배로 사천에 들어온 쉰 살쯤의 검객이다. 머리가 온통 희다.
주순 周淳
이녕의 옛 벗이다. 사천에 온 지 삼 년 된 글방 훈장이다.
양달 楊達
제로삼영의 한 사람이다. 명나라가 망한 뒤 원수의 모함으로 해를 입었다고 한다.
조연아 趙燕兒 연아
주순에게 무예를 배우는 열한두 살 아이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경운 輕雲
주순의 외동딸이다. 영경과 꼭 닮았다고 한다.
찬하대사 餐霞大師
황산에 사는 이름난 검선이다. 늙은 여도사다.
마상 馬湘
주순이 길에서 구해 준 가난한 선비다.
장헌충 張獻忠
명나라 말에 사천에서 난을 일으킨 역사 인물이다.
이틈 李闖
명나라 말에 난을 일으킨 이자성을 이르는 이름이다. 조연아의 아버지가 그 난리에 목숨을 잃었다.

문파와 무리

제로삼영 齊魯三英
이녕 · 양달 · 주순 세 사람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북쪽 여러 성에서 이름을 떨쳤다.

곳

사천 四川
촉 땅이다. 명나라 말의 난리로 비었다가 이웃 성의 백성을 옮겨 와 되살아났다.
아미산 峨眉山
사천의 명승이다. 절과 도관이 수백에 이르고, 뒷산에는 숨어 사는 고인이 있다고 한다.
무협 巫峽
장강의 험한 협곡이다. 이녕 부녀의 배가 이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다.
오아취 烏鴉嘴
마을과 저자가 있는 강가다. 이녕의 배가 닿은 곳이다.
황산 黃山
검선 찬하대사가 사는 산이다.
강서 江西
사천에 가까운 성이다. 이곳 백성을 사천으로 옮겨 보냈다.
섬서 陝西
사천에 가까운 성이다. 이곳 백성을 사천으로 옮겨 보냈다.

술법과 무공

육합검 六合劍
주순이 쓰는 한 벌의 검술이다.
천운나월 穿雲拿月
육합검에서 가장 뛰어난 한 수다. 지는 가운데서 이기는 수다.

이 글은 인쇄할 수 없어요. https://www.jadeye.net/ink/works/shushan/1 에서 읽어 주세요.

AI의 도움으로 옮기고 사람이 읽으며 고친 번역이에요. 허락 없이 옮겨 싣지 말아 주세요. 잘못 옮긴 곳을 보시면 cs@jadeye.net 로 알려 주세요.